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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야구 규칙

야구 볼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존, ABS, 프레이밍)

by incense 2026. 5. 9.

로봇이 판정하면 야구가 더 공정해질까요? 저는 포수 뒤쪽 테이블석에서 직접 경기를 보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공의 궤적을 두 눈으로 따라가다 보니, '공정함'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를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ABS 도입 이후 달라진 스트라이크존 기준과, 그 과정에서 사라진 것들을 직접 경험한 시각으로 풀어봅니다.

스트라이크존, 이론과 현장은 얼마나 다른가

일반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은 홈플레이트 위를 통과하는 고정된 사각형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포수석 바로 뒤에서 경기를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중계 화면에서는 평면으로 보이던 그 공간이 실제로는 타자의 자세, 체격, 심지어 타석에서 서는 위치에 따라 매 타석마다 다른 입체적인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2025 시즌 KBO에 적용 중인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의 스트라이크존 기준은 다음과 같이 수치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ABS란 카메라와 레이더 추적 기술을 결합해 투구의 궤적을 자동으로 판독하고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입니다.

  • 상단 기준: 타자 신장의 56.35%
  • 하단 기준: 타자 신장의 27.64%
  • 좌우 기준: 홈플레이트 폭 43.18cm에 양쪽 각 1cm씩 총 2cm 확장

숫자만 보면 명쾌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볼카운트 3-0으로 몰린 우리 팀 투수가 타자의 무릎 근처를 찌르는 낮은 직구를 연속으로 꽂아 넣으며 풀카운트까지 끌고 간 뒤 삼진을 잡아내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을 때, 그 공이 과연 수치상 스트라이크존 하단 기준인 신장의 27.64% 안에 들어와 있었는지 저는 감각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치는 명확하지만 공간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보더라인(Borderline)에서의 판정은 ABS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보더라인이란 스트라이크존의 경계선 바로 안팎을 가리키는 영역으로, 아주 미세한 차이로 판정이 갈리는 극한의 경계 구간을 의미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지켜본 순간 중 가장 짜릿했던 건, 심판이 이어폰으로 ABS 결과를 수신한 직후 주먹을 세차게 내지르며 "스트라이크!"를 외쳤을 때 관중석 전체가 일제히 숨을 참다가 터뜨리는 그 공간의 떨림이었습니다. 기계가 판정해도,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인간의 드라마였습니다.

 

2024 시즌부터 KBO 1군 전 경기에 정식 도입된 ABS는 심판이 최종 선언을 하되, 결과는 이어폰을 통해 수신하는 방식으로 운용됩니다(출처: KBO 한국야구위원회). 기계가 100%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판정 지연이나 시스템 오류 시에는 ABS 요원이 심판에게 전달하고 최종 결정은 심판이 내립니다. 이 구조 자체가 이미 "완전한 기계 판정"과는 다릅니다.

ABS가 지운 것들, 프레이밍의 소멸

ABS 도입으로 판정의 일관성이 높아졌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체감한 가장 큰 변화는 포수의 존재감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프레이밍(Framing)이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프레이밍이란 포수가 볼에 해당하는 공을 마치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도록 미트를 부드럽게 움직여 포구함으로써 심판의 판정을 스트라이크 쪽으로 유도하는 고도의 수비 기술을 말합니다. 단순한 속임수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이것이 포수가 투수를 살리고 경기 흐름을 바꾸는 가장 섬세한 야구적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ABS가 도입되면서 이 기술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기계는 미트가 어디에 있는지 보지 않습니다.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는지, 통과하지 않았는지만 판독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건 야구가 가진 정교한 기술 하나가 경기장에서 조용히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건 체크스윙(Check Swing) 판정입니다. 체크스윙이란 타자가 배트를 스윙하다가 중간에 멈췄을 때, 그 스윙이 완전한 스윙으로 인정되는지를 심판이 판단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ABS는 이 부분까지 자동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심판의 재량이 남아 있습니다. 관중석에서 타자가 배트를 분명히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스윙 판정이 나오는 순간, 만 명 가까운 관중이 터뜨리는 집단적인 분노는 ABS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얼마나 이상적인 기대인지를 현장에서 실감합니다.

 

낙차 큰 변화구 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이 포수 미트에 닿는 지점이 아니라,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순간의 좌표로 판정하기 때문에 낙차가 큰 커브볼이나 슬러브는 플레이트를 스치기만 해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판정이지만, 현장에서 타자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순간이 분명히 생깁니다. 실제로 KBO 선수들 사이에서도 ABS의 하단 판정 기준에 대한 이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출처: KBO 야구 통계 및 기록).

 

ABS 도입 이후 현장에서 달라진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볼·스트라이크 판정의 일관성 향상, 오심 논란 대폭 감소
  • 프레이밍 기술의 전략적 가치 소멸
  • 볼넷 수 증가, 삼진 감소 추이 관측 (존의 정밀 적용에 따른 결과)
  • 낙차 변화구 및 체크스윙 관련 판정 논란은 지속

공정함을 얻은 대신 전략적 기교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 저는 이 부분을 꽤 오래 곱씹었습니다.

 

야구가 숫자와 기계로만 설명되는 게임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기술이 충돌하는 드라마로 남기 위해서는, ABS의 기준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현장 선수들과의 신뢰를 쌓는 과정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그 현장에 앉아 공 하나에 숨을 멈추는 경험을 해봤다면, 이 시스템이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한 번쯤 포수 뒤쪽 자리를 잡아 경기를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중계 화면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 거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