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처음 야구장에 직관을 갔을 때는 실책이 뭔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선수가 공을 떨어뜨리면 실책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9회말 2아웃 만루 상황에서 유격수가 평범한 땅볼을 더듬어 점수를 내줬을 때, 전광판에 'E' 표시가 뜨지 않는 걸 보고 정말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게 왜 안타야?"라고 소리쳤는데, 옆자리 아저씨가 "기록원이 어렵다고 판단한 거지"라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실책 기준이 궁금해졌습니다.
실책 판정, 생각보다 훨씬 주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실책은 수비수가 공을 떨어뜨리거나 송구를 못 받으면 기록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합니다. 공식 야구 규칙에서 실책(Error)은 '평범한 노력(Ordinary Effort)'으로 처리 가능했던 타구나 송구를 놓쳐서 상대팀에게 진루나 득점 기회를 준 경우에만 인정됩니다. 여기서 '평범한 노력'이란 해당 포지션의 평균적인 수비수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플레이를 의미합니다(출처: KBO 공식 야구규칙).
제 경험상 이 기준은 정말 애매합니다. 같은 타구도 어떤 날은 실책, 어떤 날은 안타로 기록되는 경우를 여러 번 봤거든요. 특히 유격수나 3루수처럼 어려운 타구를 많이 받는 포지션은 기록원의 판단이 더 중요합니다. 강한 타구로 인한 바운드 예측 실패나 무리한 다이빙 캐치 시도 중 놓친 공은 실책이 아니라 안타로 처리됩니다.
실책이 기록되는 대표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1루 송구 실수로 주자가 세이프된 경우
- 뜬공이나 땅볼을 글러브에 맞고도 떨어뜨린 경우
- 병살 찬스에서 기본적인 송구나 포구를 실패한 경우
- 컷오프(중계) 송구를 놓치거나 엉뚱한 곳으로 던진 경우
반대로 야수 선택(Fielder's Choice) 상황에서 주자를 잡으려다 실패하거나, 두 명의 야수가 충돌해서 공을 못 잡은 경우는 실책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들이 명확해 보이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순간 판단이라 논란이 많습니다.
포지션별로 실책 기준도 다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모든 포지션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포지션 특성에 따라 기대 수준이 다릅니다. 유격수(SS)와 3루수(3B)는 타구 빈도가 높고 강한 타구를 많이 받기 때문에 실책 수 자체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2023년 KBO 기준 유격수 평균 실책은 약 15-18개 정도인데, 외야수는 5-7개 수준입니다(출처: KBO 공식 기록).
여기서 수비율(Fielding Percentage)이란 전체 수비 기회 중 실책을 뺀 비율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100번 기회 중 몇 번을 성공했는가"를 보는 지표죠. 하지만 이것도 함정이 있습니다. 수비 범위가 좁아서 아예 공 근처에 못 가는 선수는 실책이 적게 나오고, 범위가 넓어서 어려운 타구까지 시도하는 선수는 실책이 많아집니다.
포수는 송구 실책과 패스트볼(Passed Ball) 실책이 구분됩니다. 패스트볼이란 포수가 정상적으로 잡을 수 있었던 공을 놓친 경우를 말하는데, 이건 투수의 폭투(Wild Pitch)와는 다릅니다. 투수도 1루 견제 송구 실패나 타구 처리 실수 시 실책이 기록되는데, 생각보다 자주 발생합니다.
제가 직관하면서 느낀 건, 내야수 중에서도 2루수와 유격수의 실책은 관중들이 크게 반응하지만, 1루수 실책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1루수는 송구를 받는 역할이 많아서 "받기 어려웠나 보다"라고 이해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KBO와 MLB, 실책 기준이 이렇게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KBO와 MLB의 실책 기준이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실제로 MLB 경기를 보면 KBO에서는 실책으로 기록될 법한 플레이가 안타로 처리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MLB는 전통적으로 기록 판정이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합니다. 같은 타구도 MLB에서는 "어려운 타구였다"고 판단해서 안타를 주는 경우가 많죠.
KBO는 기록원이 경기장에 상주하면서 매뉴얼에 따라 비교적 명확하게 판정합니다. 공식 기록원 매뉴얼에는 포지션별, 상황별 실책 판정 기준이 상세히 나와 있고, 이를 바탕으로 즉석에서 결정합니다. 반면 MLB는 공식 기록원(Official Scorer)이 더 많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어서, 같은 상황도 기록원에 따라 다르게 판정될 수 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NPB)는 또 다릅니다. 판단 기준표에 매우 충실한 편이라 KBO보다 더 일관성 있게 기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한 타구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서, 타구 속도나 거리에 따라 거의 자동으로 안타/실책이 결정됩니다.
실제로 제가 KBO와 MLB 경기를 비교해보니, KBO 유격수 평균 실책은 시즌당 약 16개인데, MLB는 약 12개 정도입니다. 이게 수비력 차이라기보다는 판정 기준 차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선수가 리그를 옮기면 실책 수가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실책보다 중요한 건 수비 범위입니다
요즘 야구계에서는 단순 실책 수나 수비율만으로 수비력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UZR(Ultimate Zone Rating)이나 DRS(Defensive Runs Saved) 같은 고급 지표를 함께 봅니다. UZR이란 수비수가 자기 수비 구역에서 평균 대비 얼마나 많은 실점을 막았는지 계산하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이 선수가 있어서 몇 점을 덜 내줬는가"를 보는 거죠(출처: FanGraphs).
제가 실제로 경기를 보면서 느낀 건, 실책이 적은 선수가 꼭 수비를 잘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수비 범위가 좁아서 어려운 타구에 아예 시도조차 안 하면 실책은 안 나오지만, 그 공은 결국 안타가 됩니다. 반대로 수비 범위가 넓어서 무리하게 시도하다 실책이 나와도, 전체적으로는 더 많은 아웃을 잡아주는 선수가 팀에 더 도움이 됩니다.
DRS는 수비로 만들어낸 아웃 개수를 점수로 환산한 지표입니다. 범위지수(Range Factor)는 수비수가 9이닝당 처리하는 타구 개수를 나타냅니다. 이런 지표들을 종합하면 실책이 많아도 실제로는 수비 기여도가 높은 선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전광판의 'E' 하나가 선수의 멘탈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 실책은 경기 흐름뿐 아니라 선수의 자신감까지 무너뜨립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실책이 많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타구까지 시도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단순 실책 수보다 종합적인 수비 지표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평범한 노력'이라는 애매한 기준보다는, 타구 속도와 각도를 기계적으로 측정해서 객관적인 기준을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MLB는 스탯캐스트(Statcast) 시스템으로 모든 타구의 속도와 궤적을 측정하고 있으니, 이를 실책 판정에도 활용하면 논란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또한 기록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정신적 실책', 즉 주자 위치를 착각하거나 느슨한 플레이로 진루를 허용하는 상황도 별도 지표로 만들어서 팬들에게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실책이라는 기록이 선수를 비난하는 도구가 아니라, 더 나은 수비를 만들어가는 합리적인 데이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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